가이드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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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전27승1패 다시 일어서는 챔피언채승곤복싱클럽이란 간판이 새로 올려져있다. 여자인 내 눈에는 복싱이라면 그저 ‘다이어트될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기에 자기이름을 걸고 복싱장을 오픈하는 걸까 궁금증에 네이버에 그이름 석자를 검색해봤다. 매니 파퀴아오라는 선수와 시합을 한 동영상이 쭉 나온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들도 나온다. “프로복싱 28전 27승 22KO 1패” 복싱을 모르지만 뭔가 대단한 성적이란 느낌이 팍 온다. 그 삶이 궁금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체육관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전 75년생 채승곤입니다.” 완도가 고향이고 영광엔 친구들이 있어 오가다 영광에서 한번 살아보고싶다는 생각에 체육관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다닐때부터 공부엔 관심이 없고 운동만 하고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또 운동을 좋아하셔서 아버지의 응원 으로 전남체중을 가면서 레슬링부터 시작하다 18살에 권투로 바꾸었죠.19살에 선수가 되겠다고 서울로 올라와 체육관에서 생활하면서 운동을 이어갔죠. 청소도 하고 링위에서 이불깔고 자고, 저희는 운동 시간과 자유시간이 불규칙해 직장생활은 못하고 식당 이나 중국집 같은 배달 위주의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며 프로대비전을 준비 했습니다. 4회전 7번, 6회전 2번,8회전 1번,10회전 10번 한국랭킹광 한국챔피언전을 거쳤죠. 프로복싱 전적 28전 27승 1패인데 그 선수가 매니 파퀴아오네요. 딱 그 선수에게 한번 패배했네요.“그 렇게 달려가시다 왜 그만두 셨어요?” 옆에 계신 채승곤님과 닮아 보이는 분이 대답하신다.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쓰러 지시면서 그만두게 되었죠. “실례지만 두 분 많이 닮으 셨는데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형제 입니다. 제가 6살 위 형입니다. 아~ 두분이 이 체육관을 같이 운영하시나요? 저는 본업은 따로 있고 동생 도와주려고 짬이 날 때 이리 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누워계셔서 동생이 아버지 병간호 한다고 운동을 그만두었죠. “채승곤님 아버지를 돌볼 사람이 없었나요? ” 아버지가 제 꿈이고 희망이 어서 아버지가 쓰러지시는날 제 꿈과 희망도 없어졌으니까요. 늘 제 시합장엔 아버지가 와 계셨어요. 아무말 없이 제 시합을 보시고 트로피 받으면 그걸 품에 안고 완도까지 가셔서 배타고 집까지 가셨죠. 늘 시합장 한자리에서절 바라보고 계셨죠. 그렇게절 지켜봐주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방황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는다고 또 할수 있는 짓이 이것밖에 없어 글 러브를 다시 끼네요. 아버지는 안계시지만 또 이리 형이제 옆을 지켜주고 있으니 ... 끝말을 흐리시는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 그를 또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한분. 이 형제들의 눈빛으로 그 아버님이 얼마나 이 형제들에게 믿음이란 크나큰 나무를 심어놓으셨는지 보였다. “권투를 잘하면 일상에서도 싸움을 잘 하나요?” 밖에서는 안 싸워봐서 잘 모르겠습니다. 세계챔피언이 될 선수를 키워보고 싶다는 채승곤씨의 꿈이 이루어 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그럼 우리 고장 영광에서도 복싱 세계챔피언도 배출되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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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 "난헌갤러리"맛 ★★★ 다른곳은 과일음료 종류에 과일이 아예 갈아져서 나오는데 이곳의 홍시라떼는 홍시가 작은 덩어리로 있어 홍시의 식감과 온전한 홍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이스 카페라떼는 진한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만남으로 부드러 우면서 고소하다. 카페에서 직접 만드는 여러 종류의 수제식빵이 있다. 이곳에서 맛 본 모찌수제식빵은 달달한 맛의 팥과 쫀득한 모찌에 부드러운 빵의 조합은 정말 예술이였다. 생크림이나,딸기잼을 안찍어 먹어도 맛있다. 생크림수제식빵은 생크림을 식빵안에 넣어 나오지만 빵의 열기로 생크림이 빨리 녹기 때문에 생크림을 따로 요청 하는것을 추천한다. 이곳의 생크림은 직접 만들기 때문에 일반 생크림 보다 덜 달고 고소함까지 느낄 수 있다. 접근성 ★★★ 상사화로 유명한 불갑사로 가는길 불갑모악보건소 바로 뒤에 위치한 난헌갤러리. 영광터미널에서 난헌갤러리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되며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라 주변 논밭을 바라보며 드라 이브하기에도 좋다. 난헌갤러리의 외부는 깔끔하면서 세련된 인테리어로 되어있다. 가게 앞 주차 공간이 있어 주차의 불편함이 없고 날씨가 좋은날 가게앞 흔들그네에 앉아 하늘을 올려 다 보면 평온하다. 서비스 ★★★ 난헌갤러리는 인테리어부터 고객을 위한 공간 같았다. 높은 천장과 넓은 내부와 고급진 대리석테이블, 푹신한 의자, 생화로 된 꽃병까지. 특히 꽃은 일주일에 한번씩 바꿔주기 때문에 늘 예쁘고 향기 나는 꽃을 볼수 있다. 그리고 자그만한 갤러리에는 카페 사장님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자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 질감,색감,음영 등만드신 분의 섬세함과 정성이 느껴진다. open : 10시30분 close : 19시30분 (동절기에는 18시30분~19:00사이) 휴 무 : 연중무휴 (눈 올때는 좀 늦게 오픈 할수 있음) 주 소 : 전남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2길 5 (061/351/0118) 어바웃가이드는 어바웃영광에서 시식비용을 전액 지불하고 작성한 리얼맛집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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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은 나의 천직이며 아이들은 나의 운명이다.학창시절 부모님이 힘들게 버신 돈은 우리 삼형제의 학원비와 과외비로 대부분 나갔다. 그럼에도 난 부모님 모르게 운동을 했다. 야구, 레슬링, 합기도 등 운동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을 만큼 운동이 좋았다.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말에 반기를 들듯 미친듯이 운동만 하던 어느 날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내 인생 전체를 놓을만큼 큰 충격 이었다. 너무도 건장하셨고 내게 그어떤 산보다도 컸던 아버지 였기에 고 3때 아버지의 죽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공허 함이었다. 그 후 난 운동은 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좋은 성적 한번 못보여 드린것이 그리도 후회가 될줄 이야. 그냥 운동만한 나 자체가 아버지에게 큰 불효를한 기분이라 운동을 접기로 맘먹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지원해 군대에 갔다. 제대후 대형면허를 따 버스를 운전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되고, 시골길을 운전하는 내모습에 그럭저럭 만족한다고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18명의 관원이 있는 영광합기 도를 맡게 되었고 두번 다시 하지 않을거라 다짐했던 운동은 내게 운명처럼 돌아왔다. 행복했다. 즐거웠다. 살아 있음을 느꼈다. 난 운동으로써는 내 자신이 공인이라 여긴다. 내 새끼들이 여기저기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감히 어디서 나쁜 행동, 나쁜 마음을 먹을수 있겠는가. 늘 관원의 아이들이 먼저라내 가족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집에 계신 어머니, 아내, 아이들까지 이런 나를 자랑 스럽게 여기고 응원해 주고 기도해 주시는 그 마음을 잘알기에 난 더더욱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보살필수 있다. 7살 꼬마였던 녀석이 이제 성인이 되어 소주한잔 하자며 찾아온다. 고민을 털어놓을 유일한 멘토라며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 라는 생각에 크나큰 상을 받는 기분 이다. 운동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당당하게 운동할수 있게 만들어 주고파 난 계속 공부를 한다. 학창시절 그 많은 돈을 주고도 하지않았던 공부를 마흔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 내발로 찾아가 대학원 등록을 하고 책을 펼쳐든다. 운동으로도 성공할수 있고 행복하게 살수 있는 길을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파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한다. 아이들을 나를 멘토라 부른 다. 아이들의 멘토라는데 내가 어찌 현실에 주져하는 관장만 할수 있겠는가. 아이들의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나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난 아이들과 함께 웃는게 좋다. 아이들이 잘못을 하면 따끔하게 야단도 친다. 그것은 나도 이 아이들의 부모라 생각하기에 그렇다. 내 자식 들이기에 혼도 낸다. 난 아이의 꿈을 응원해 주는 부모이고싶다. 물론 내 품안에 있는 내 자식들이니 운동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건강했으면 좋겠고 행복했 으면 좋겠다. 꿈을 가졌음 좋겠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고 이루었음 좋겠다.많은 아이들이 시합에 나가길 바래 대형버스도 구입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아이들이 시합에 나가 매달을 따고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하나로 가족 모르게 버스를 구입했다. 나중에 어머님이 알게되어 등짝 한대 맞긴 했지만 이런 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이 기에 그져 아이들 태우고 안전하게 운전하라고 하신다. 버스운전기사였던 경력이또 이렇게 쓰일 줄이야. 돌고돌아온 내 인생길이 다 내가 지금 이자리에 있게 함의 준비였던것 같다. 생물학적 아이는 1남2녀이다. 허나 내 아이를 말 하라면 100명이 넘는다. 난 그누구보다 자식을 많이 낳은 아빠이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내아이들이 긍정적인 마음 으로 꽃보다 더 예쁜 미소로 자기들의 꿈을 향해 자라는걸 지켜보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을 안다.` 이 아이들이 나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기에 내 모든 삶은이 아이들에게 맞춰있다. 관장 최수남ㆍ인간 최수남의 목표는 우리아이들이 대학부터 취업까지 노력한 댓가를 받을수 있게 하는것이다. 그 목표 하나로 난 오늘도 배우고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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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과 멋 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 영광맛집 '해성식당'맛 ★★★ 예약을 하고 가면 10가지 이상의 반찬들이 셋팅 되어있다. 반찬들 모두 간도 적당하고 맛있지만 그중에서 코다리찜은 살도 많고 짭쪼름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에 자꾸 먹게 된다. 향이 좋은 미나리무침,새콤달콤한 파래무침에도 계속 손이 간다. 메인요리인 불낙은 선홍빛의 소고기와 꼬물꼬물 살아 움직이는 낙지와 고구마줄기,무,대파등등이 들어간다. 양념은 고추장이 아닌 고춧가루로 양념이 되어 있어 다 익혀진 후에는 빨간색 국물이지만 매운맛은 나지 않고 무가 들어가서 시원한 맛과 달달한 맛에 아이들이 먹기에도 적당한 메뉴이다. 잘 끓인 불낙의 소고기는 부드러우며 낙지는 탱탱하면서 쫀득쫀 득한 식감을 느낄수 있다. 불낙을 먹다가 남은 국물에는 공기밥을 넣고 볶아 먹는 방법도 추천한다. 볶음밥 메뉴가 따로 없기 때문에 직접 공기밥을 넣고 비벼야하는 단점이 있지만 볶아놓은 밥에 막담근거 같은 아삭아삭한 김치와 함께 먹으면 최고의 맛을 느낄수 있다 접근성 ★★★ 영광읍 물무로에 위치한 해성식당. 주차 공간은 따로 없기 때문에 가게 앞이나 공간있는 곳에 주차하면 된다. 식당안으로 들어서면 서너개의 대야 안에 살아있는 싱싱한 낙지와 꼬막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다. 식당은 가정집형태로 되어 있으며 좌석이 홀과 룸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으나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때는 손님이 많기 때문에 미리 예약하고 방문하는것이 좋다. 서비스 ★★★ 어머니,아들,며느리 세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다.손님이 많아서 일손이 부족해보였지만 손님들이 많은것에 비해 자리셋팅이며 음식 나오는 회전율은 빨랐다. 또 바쁜 와중에도 반찬 리필등 요청사 항에도 재빠르게 리필해주었다 그리고 깨끗하게 닦여진 테이블에 식기류도 물기 자국없이 깔끔했다. 추운날씨에도 땀흘리며 일하는 주인아주머니. 그래도 한번씩 웃어 주시는 모습에 기분좋게 식사 할 수 있었다. 위치 : 전남 영광군 영광읍 물무로 102-1 영업시간 : 8시~22시 전화 : 061-351-3595 어바웃가이드는 어바웃영광에서 시식비용을 전액 지불하고 작성한 리얼맛집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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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과 멋 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 '크레마'맛 ★★★ 크레마의 가장 큰 매력은 커피, 차 종류도 다양하지만 오늘 만든 신선한 빵이 제공 된다는 점이다. 베이커리는 마늘바게뜨와 검정 고무신, 베이컨치아바타, 크루아상, 밤식빵, 인절미빵, 치즈크림타 르트, 초코타르트 등 다양한 메뉴들이 많다. 그 중 검정고무신은 오징어먹물로 까맣게 만들어진 바게뜨다. 그모양이 마치 검정고무신과 닮아 네이밍도 ‘검정고무신’이 되었다.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100% 우유 버터와 매일 삶은 국내산 팥의 조합으로 자칫하면 느끼할 수도 있는 조합이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고 부드럽고 담백하면서 달달한 맛에 빠져든다. 크레마는 맛과 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천연발효종과 질감을 나타내는 탕종을 사용한 숙성반죽하기 때문에 빵의 그윽한 향과 쫄낏함을 더 느낄수 있다. 접근성 ★★★ 단주리에 위치한 카페 크레마. 크레마 주위에는 팬덤엘리제빌,빌라들이 있어 주변이 한적하다. 가게 앞에는 이미 주차가 늘 되어 있기 때문에 주차하기에는 조금의 불편함이 있다. 외부의 한적함과 달리 카페 내부는 테이블마다 손님들로 가득 차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외 테라스에서 브런치타임을 갖는것도 좋을거 같다. 다른 카페와는 달리 방문하는 손님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서비스 ★★★ 10시부터 마늘바게트를 시작으로 1시까지 모든 빵들이 나온다. 오후 5시쯤에는 빵들이 거의 다 소진된다. 또 그날 다 팔지 못한 빵들은 다음날 아침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 어르신들을 위해 기부업 체에서 나와 빵을 실어간다고 한다. 빵 하나에 행복함을 느낄 아이 들과 어르신들을 생각하는 사장님의 마음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직원분들도 바쁜 와중에도 빵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시식할 수 있게끔 준비되어 있어 맛보고 원하는 빵을 담을 수 있으니 편하다. 어바웃가이드는 어바웃영광에서 시식비용을 전액지불하고 작성한 리얼맛집후기입니다. 위치 : 영광읍 천년로 11길 62 영업시간 : open 9:00 ~ close 22:00 전화 : 061-351-5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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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의 고달픔 영광읍 여중생A양저는 사춘기 중1 입니다. 사춘기가 뭔지 잘모르겠는데 어른들이 저더러 사춘기랍니다. 엄마와 얘기하고 제방으로 들어가는데 그냥 문을 닫고 싶어 닫았는데 엄마와 친구 분이 '사춘기 인가봐' 합니다. 동생이 까불어 동생과 싸웠 는데 엄만 어찌 시작된 일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를 혼내기에 그게 아니라고 억울해서 눈물이 흐르는 건데 그것도 '사춘기냐?' 하십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밖에 서도 저희의 행동에 어른들이 '쟤네 사춘기야' 라고 하시니 '아~내가 사춘기구나' 라고 느낍니다. 저도 친구와 약속이 있는데 약속은 지켜야 하는거라고 가르켜 놓고선 엄마일있다고 친구와의 약속 취소하고 집에서 두 동생들 보랍니다. "엄마가 없을때 너가 이녀 석들 보호자야. 너가 아빠이고 엄마야" 전 이제 14살.가끔 엄마도 아직 날 '아가야' 라 부르면서 절 보호자로 만듭니다. 엄마가 약속있을때요. 아침에 등굣길. 저의 학교가는 길에 두동생들 초등학교도 유치원도 있습니다. 엄마가 등교하면서 두동생 들을 함께 데리고 나가랍니다. 가는 길이니 데리고 가라고 요. 허나 전 가는 길에 할일이 많습니다.친구도 기다려야 하고 친구와 편의점도 들려야 하고. 그런 저더러 엄만 동생들을 데려가랍니다. 투덜 되었더니 "너 사춘기냐?" 그러십니다. 집창문으로 등교하는 우리를 향해 엄마가. 소리를 치십니다. "애기들 손잡고 가야지!" 네.네.네. 두동생들 손잡으라 하고 전 뒤에서 지시를 합니다. '차온다. 옆으로 서.' '손들고 이쪽저쪽 보고 건너' 친구도 편의점도 뒤로 한채 교복입은 전 두동생들 보호 자가 되어 등교를 합니다. 엄마가 친구들과 얘기를 합니다. "호호호. 우리 애들은 아침에 셋이 등교해. 우리 큰애가 다 되려가." "어머..야 니네딸. 넘 착하다. 대견스럽다." "응. 우리 큰애가 좀 그런게 있어" 헐;;; 엄마가 시켜놓고선, 지각한다고 안된다 해도 너가 일찍 나가면 되잖아 하면서 두동생 데리고 나가라면서 대견스럽답니다. 전 대견스럽지 않아도 되니 보호자 말고 그냥 딸이고 싶습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습니 다. 엄마가 친구들 이름을쭉 물어봅니다. 그리고 친구 들이 집으로 돌아간뒤 엄마가 저를 불러 물어봅니다. '저친구는 집이 어느 쪽이야. 부모님이 뭐하셔?' 적어도 제가 어떤 친구들과 노는지는 알아야 된다는 이유랍니다. 허나 저희는 친구 부모님들이 뭐하시는지 관심없습니다. 우리들 이야기를 할뿐이지 가족들 이야기는 서로 묻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걸 왜 알아야 하는건지 잘모르겠습니다. 엄만 저의 절친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십니다. 욕을 잘하고 남친이 있다는 이유 입니다. 허나 요즘 욕 안하는 친구 없습니다. 저희 가족은 워낙 어릴적부터 엄마가 예쁜 말만 쓰라해서 , (실은 저희엄마 정말 욕을 포함 비속어는 안쓰시긴 합니다) 저는 욕을 쓰진 않지만 친구 들의 욕을 다 알아는 듣습니 다. 그것은 욕이라기보다 그냥 우리의 언어에 가깝습니다. 남친은 고등학교졸업 하면 사귀랍니다.그래서 알았다 했습니다. 허나 친구들은 엄마 딸이 아닌데 남친이 있든 없든 그건 엄마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쇼파에 앉아 계시는 엄만 막내동생이 엄마를 부르는 수만큼 저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막내동생이 혼잣말을 합니다. "내가 엄마 불렀지 언니 부르나? 언니가 내 엄마야?" 그 소릴 듣고 엄마가 말합니다."응. 사실은 니 언니가 엄마야~" 저는 첫째가 아니고 그냥 딸이고 싶습니다. 사춘기도 어른들이 정해주 셨고 첫째도 제가 선택한것이 아닙니다. 불만을 토하는 제게 엄마가 그러십니다. "내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너 어릴땐 너 바닥에 내려놓 지도 않고 내품에 안고 살았어. 다~ 너 옷ㆍ신발 주라고 줄섰었지. 내가 정말 너를 이쁘게 키웠었지. 너 키울때 생각하면 니 동생들은 내가 너무 막 키워" 전 기억에 없습니다. 기억이 없으니 추억도 안되는 엄마 만의 기억을 제게 말해 주며 위로 받으라 하는데 전 도무지 기억이 안납니다. 동생들 처럼 그냥 막 키우고 지금 기억할때 사랑을 좀 주시지ㅜㅜ 쇼핑을 가면 엄만 학생스타 일이 아니라 안된다합니다. 이것이 우리 스타일인데 우리엄마는 정말 답답합니다. 피부 다 상하니 화장하지 말랍니다. 그건 엄마말이 맞는 듯해 화장은 안합니다. 친구들과 요즘 뜨는 랩을 부릅니다.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차라리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겐 노래인데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데 자꾸만 그것말고 노래를 부르 랍니다. 우리의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엄마에게 "엄마가 우리를 알아?" 했더니 엄마가 대답하시길 "나는 애도 되어봤고 어른도 되어봤어. 딸도 되어봤다 엄마도 되어 봤다고! 넌 딸만 되어 봤지 엄만 안되어 봤잖 아! 너가 나중에 엄마 되봐. 아~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 이었구나 하지. 딱 너같은딸 키워봐" 하십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그러십니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하던말 진짜 내가 똑같이 내딸 한테 하고 있네 " 전 나중에 결혼해서 애기 낳아도 엄마처럼 안키울겁니 다. 정말 친구처럼 예쁘게 키울 겁니다. 사춘기도 모를만큼 사랑이 넘치게 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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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 "노을"맛 ★★★ 주문과 동시에 따뜻하게 데워져 나오는 모닝빵이 제공 된다. 메인 요리 중 하나인 단호박돈까스는 돼지등심에 튀김옷을 얇게 입혀 바삭한 식감이 좋고 두툼한 고기의 식감과 육즙은 입안을 가득 채운다. 또 단호박의 가벼운 단맛과 치즈의 고소함이 어우러지며 다른 돈까스와 차별 된다. 흰색의 크림소스와 붉은색의 토마토소스를 섞어 만든 로제파스타는 약간 매콤하지만 크림소스로 뒷맛은 부드러워 더욱 풍미 가득 하다. 함께 주문한 까르보나라스파게티도 담백한 맛이 좋다. 진한 크림 소스 속에 베이컨의 고소함이 살아 있다. 스파게티 메뉴는 전체적으로 면의 두께가 적당 하여 음식을 모두 먹을 때 까지 면은 불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접근성 ★★★ 노을레스토랑의 위치는 백수해안도로 일주코스의 중간부분에 위치해 있다. 영광읍에서 차로 이동 할 경우 약 30~40분 소요된다. 하지만 대부분 백수해안도로를 찾는 이유가 드라이브와 같은 다른 목적이기에 식사나 차와 같은 쉼을 위해 들리기에는 노을레스 토랑이 아주 적격이다. 백수 해안도로를 따라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일상속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가벼운 식사와 음료로 기분전 환을 할수 있다. 특히 확트인 창은 막힘없는 뷰를 제공하며 레스토랑 건물 자체도 이색적인 느낌으로 다가선다. 서비스 ★★★ 먼저 멋진 경치를 시원하게 바라볼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가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점원들의 친절한 안내가 시작되었고 주문이나 피클 등을 추가 할때도 곧바로 응대를 해주어 큰 불편 함을 느낄 수 없었다. 화장실과 내부 청소도 깔끔했다.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식당이지만 테이블과 식기류는 청결하게 관리 되고 있었다. 어바웃가이드는 어바웃영광에서 시식비용을 전액 지불하고 작성한 리얼맛집후기입니다. 위치 : 전남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해안로 565-9 영업시간 : 10:00 ~ 22:00 전화 : 061-35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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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 '호타루'맛 ★★★ 기본적으로 준비되는 신선한 야채들과 상큼한 소스의 샐러드와 따끈한 미소장국. 투명한 튀김옷으로 덮여 있어 바삭함을 느낄수 있는 새우튀김과, 최고급 국내산돼지 ‘도드람한돈’ 생등심을 사용 하는 돈까스는 두툼한 두께에 겉은 바삭바삭 속은 촉촉함을 느낄수 있다. 초밥은 참지초밥(눈다랑어,청새치), 소고기 불초밥(살치살), 광어 초밥, 생연어초밥, 생연어불초밥, 왕새우초밥, 왕새우불초밥, 계란 초밥,유부초밥등의 다양한 초밥메뉴들이 있다 초밥위에 올라간 회는 신선하고 두툼하니 먹는 식감이 좋다. 또비린맛이 없어 계속 맛보고 싶어지는 초밥이다. 접근성 ★★★ 영광군청 근처 물무로에 위치한 호타루.주차공간은 따로 없지만 가게 앞 도로 빈곳에 주차하면 된다. 가게 내부는 앉을수 있는 자리가 7자리로 대분분의 손님들은 포장 이나 배달손님이 많다. 앉아있는 자리에서 일식 15년 경력의 사장님께서 조리하는 모습을 다 볼 수 있으니 믿고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직접 만드는 돈까스와 초밥 재료들은 당일 준비한 재료를 모두 소진하면 조기 영업 마감이 된다. 포장시 30분전에 미리 주문전화하면 바로 가지고 올수있다. 서비스 ★★★ 초밥은 횟감의 상태를 보고 더 신선한 초밥을 추천해주시는 사장 님의 친철한 서비스 또 주문시 밥알크기와 와사비양을 미리 얘기 하면 거기에 맞춰서 만들어주는 세심한 서비스까지 더해 든든하게 배를 채울수 세트 메뉴도 있다. 위생상태도 전체적으로 깔끔하다. 시간들여 광주까지 갈 필요없이 영광에서 맛있는 음식의 식감과 친절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곳이다. 위치 : 전남 영광군 영광읍 영광읍 물무로 95 영업시간 : 11:00 ~ 23:00 (일요일휴무) 전화 : 061-351-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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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지붕 두가족"저의 이야기를 들려주라구요? 내 이야기? 뭐지..내가쓸 이야기가 있나?" 한지붕 아래 꽃집과 미용실이 있다. 부산사투리가 예쁜 꽃집아가씨에게 어찌 영광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서른 두해를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라 했더니 수줍게 웃는다. 이내 침묵이 흐르고 자기 이야기 별것 없다던 지현씨의 두 뺨에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이 입을 뗐다. "나 왜 이러지. 왜 눈물이 나노.." "언니 저는요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클 때는 아빠는 운수업한다고 늘 바쁘시고 엄만 미용실하니까 바쁘 셨어요. 나랑 동생은 부모님 손을 잡을 시간이 없었어요. 만날 엄마가 손님들 머리 잘라주고 파마 말아주고 이런것만 보고 자라서인지 자연스레 미용사가 되야겠다 생각했지요.서당 개3년 이면 풍월도 읊는다잖아요. 고1때 미용자 격증따고 미용사로 성공하 겠다고 계속 미용쪽으로만 공부하고 일하고.. 그러면서 결혼도 하고 애도 셋이나 낳는데 신랑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어찌 해야 하나 막막할참에 친정 부모님이 아빠고향으로 내려가서 양계장을 하신다고 같이 갈래? 하시잖아요. 신랑이기술도 없제 돈도 없제 뭐 생각 할것도 없이 엄마 아빠 따라 영광으로 왔지요. 부모님하고 우리 부부하고 우리 3남매까지 온가족이 내려왔는데 우와~~ 이 시골 생활이요 만만한게 아니더라 구요. 이게 어렵다 어렵다 해도 우리는 어른들이라 괜찮은데 애들까지 너무 힘들어 하는거에요. 그때 3 살이었던 큰 애가 어린이집 가서 말투 때문에 친구들 한테 놀림당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가 머리에 탈모증 세가 나타나고 오줌까지 싸고..정말 그때는 다 때리치 우고 다시 부산으로 가고 싶었어요. 부모님한테 월급을 받으며 양계장일을 하는 남편은 저 하나 믿고 난생처음 영광이란데를 와서 살고 있으니 말할 사람도 없고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엄마까지온 가족이 양계장에만 싸여 있으니 이건 가족이 다 짜증만 늘어가고 안되겠더라 구요. 그래서 두번다신 가위 안잡겠다던 엄마가 미용실을 차리려 가게를 알아보는데 마침 마땅한자리가 있는데 이 자리 인수 조건이 기존에 있던 꽃집을 그대로 인수를 해야 한다는거래요. 그래서 가격대비 가게자리도 괜찮고 해서 무작정 계약 을 했죠. 꽃을 볼줄이야 알았지 꽃향기가 다 다른지도잘 몰랐던 내 한테 꽃가게를 넘겼으니 이게 참 황당하 데요. 그래도 그 꽃들을 시들게 내버려둘순 없어서 꽃강사님을 찾아 꽃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죠. 헌데 이 꽃이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너무 매력적인거에요. 꽃에 대해 욕심이 자꾸 생기더라 구요. 그래서 전 미용가위를 내려놓고 꽃가위를 들기 시작했죠. 지금은 꿈이 생겼어요. 꽃으로 강단에 설꺼에요. 누가 그런 말 했죠. 뭐든 이유 없는게 없다고. 언니 저는 어찌 이 꽃들이 나한테 왔을까 참 어의없다 했는데 나를 살릴라고 이 꽃들이 나한테 온것 같아요. 요즘은 우리 애들도 꽃보며 자라서인가 더 이뻐지고 밝아지고 내가 꿈도 갖고 내가 살아 있다는걸 느껴요. 양계장도 부모님이 우리한테 도 맡아 해보라 권한을 주셔서 남편도 너무 신나게 일하고 있고 힘들땐 지옥처 럼도 느껴졌던 이 영광땅이 지금은 저희한테 천국같아요. 이 곳에서 우리의 꿈과 희망을 다 보고 살아요. 진짜 영광오기 잘했다 싶어요. 엄마 아빠가 일한다고 가게에서자란나는 정말 우리 애들만큼은 내가 집에서 다른 엄마들 처럼 맛있는 간식 만들어 주며 그리 키워 야지 했는데 나 클 때 랑 똑 같 이이리 가게방에서 키워 그게 애들 한테 좀 미안하긴 해요. 그래도 언니 우리 애들 방긋방긋 잘웃고 꽃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잘 크고있어요. 내가 이리 살아보니 우리 엄마 아빠 참 열심히 사셨구나 알겠더라구요. 언니 그거 알아요? 이렇게 행복한걸 내가 알고 있어서 행복한거요." 지현씨 정말 살아보니 그렇 더라. 내게 다가온 새로운 사람이든 환경은 이유가 없는게 없더라. 그러니 행복도 슬픔도 끝까지 가는건 없다고 하잖아. 이 행복이 슬픔을 가지고 오는 이유가 될때도 있고, 이 슬픔이 행복을 가지고 오는 이유가 될때도 있더라구. 지금은 이 곳이 천국이라 좋을텐데 또 어려울때도 있을 꺼야. 그때도 지금 지현씨가 겪은 아픔들 또 그뒤에 행복 까지잘 기억해 뒀다가 꼭 이겨 내. 진정 행복을 느끼며 사는 지현씨 참 이쁘다. 꽃보다 향기로운 당신..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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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를 체조영재라고 합니다."나는 13살 김선우 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체조영재라고 말을 합니다. 제 모습이 티브에 나올땐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도 다녔지만 사실 저의 노력을 알아줄땐 뿌듯합니다." 6살때쯤 운동이 하고 싶어 엄마 손을 잡고 태권도학원을 갔습니다. 헌데 제가 티브에서 봤던 태권도 선수들은 막 날라다니는데 그래서 저도 날고 싶어 학원을 갔는데 날지않더라구요. 그래서 엄마한테 날고 싶다고 막 날라다니는걸 하고 싶다했습니다. 그런 제게 엄만 날라 다니는건 체조밖에 없다고 살도 뺄겸 체조장을 가보자 했습니다. 엄마의 모교 영광중앙초등학교 였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 체조 선수였던 엄마는 이곳 체조장 위치도 잘알았고 선생님들과도 잘 아셨습니다. 엄마와 체조를 하는 형아들을 보니 이거였습니다. 날라 다녔습니다. 형아 들이 하늘을 날라다녔습니다. 전 엄마한테 체조를 배우겠 다고 했고 엄만 제게 다짐을 받았습니다. 절대 중간에 힘들다 포기하지않기ㆍ왜 체조 시켰냐고 엄마 원망하지않기 ㆍ울지 않기 합숙훈련으로 집을 떠나 스스로 저를 책임져야해도 즐거웠습니다. 손에 피부가 까져 피가나도 기술을 성공할때면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게 4년 정도 하루도 빠짐 없이 정규수업후 3시부터 9시 까지 운동을 하니 하루는 친구 들과 놀고 싶었습니다. 엄마한테 하루만 쉬면 안되냐니 선생님과 얘기를 하랍니다. 운동에 있어서는 모든걸 선생님과 상의를 하라고 해서 선생 님께 하루만 쉬게 해달라 혼날 것을 짐작하고 물어봤습니다. 허나 선생님은 너무도 쉽게 제게 하루 휴가를 주셨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는걸 또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체조생각않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첫시합에 나갔습니다. 전 3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초등학생 4학년이 메달을 이렇게 따는건 최초 라고 사람들이 저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뿌듯하단 뜻이 뭔지 생각도 안해봤는데 뿌듯했습니다. 저의 꿈은 제가 19살이나 20살에 올림픽에 나가 금메 달을 따는겁니다. 부모님의 직장생활로 인해 저를 키워 주신 외할머니목에 제가 딴금메달을 목에 걸어 드릴겁니다. 아저씨들 손처럼 두투워진제 손바닥을 할머니는 가슴 아파 하십니다. 하지만 전그게 제 손이라 친구들 처럼 부드럽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냥 할머니가 마음아파 하시는게 마음이 아플뿐입니다. 저는 오늘도 제 꿈을 향해 하늘을 날라 다닙니다. 한일합숙 훈련으로 집을 떠나 있지만 제 자신이 여기 있기에 두려움없이 훈련을 합니다. 제 꿈은 저만이 이룰수 있으니까요. 선우야! 많은 친구들이 아직 꿈이란걸 못 찾았는데 그런 친구들한테 해주고 픈 말 없을까?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으면 시작해봐. 해보고 안맞으면 다시 다른거 해보면 되니까 겁먹지말고 해봐. 선우야 ! 선우 이야기가 신문에실릴건데 마지막으로 하고픈말 있음 해줄래? 할머니가 건강하셨음 좋겠어요. 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딸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셨음 좋겠어요. 그게 제 꿈이니까요. 선우야! 지금부터 6~7년 후 선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서 외할머니 목에 메달 걸어드리는 모습 꼭 티브로 볼께. 네! 13살 김선우군과 짪은 만남 에서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그리고 정말 영광군민들 아이어른 할것 없이 정말 열심히 사는 모습에 매 주 이렇게 군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훈훈함을 느낍니다. 영광군민이 있기에 영광군은 늘 발전하며 빛나는 고장이 될것임을 믿습니다. 차가워진 날씨에 우리 군민 여러분건강 잘 챙기시고 언제나 응원 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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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과 멋 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_궁중왕갈비탕맛 ★★★ 역시 왕!! 간판 이름답게 궁중왕갈비탕의 건더기는 크고 살이 두툼한 갈비뼈 2개와 혈액순환,위장질환,심혈관계 예방과 개선에 좋은 목이버섯, 고혈압, 당뇨예방, 피로회복개선 및 항치매, 간보호, 암예방 등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새싹인삼까지 한끼 식사로 건강을 챙겼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매일 이른 새벽 육수를 마련한다는 대표님의 말씀처럼 국물 한숟 가락에서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두툼한 갈비살을 가위로 쑹덩쑹덩 잘라내고 소스그릇에 담궈 놓으니 소스를 흡수한 고기맛이 부드러운 것이 엄지척이다. 깍두기는 딱 알맞게 잘 익어 갈비탕과 환상의 궁합을 이루고 김치는 젓갈을 넣었는데도 비리지 않고 김치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육계장, 도가니무침, 웻에이징 소고기, 연포탕, 낙지볶음 등 메뉴가 다양한데 대표님이 직접 먹어보고 오랜 기간 연구한 끝에 구성된 메뉴판이라며 자부심이 재방문을 자연스레 유도 했다 접근성 ★★★ 영광읍 신하리에 위치한 궁중왕갈비탕은 점심시간 때 주차하기가 쉽지 않았다. 건물 뒷편 도로가에 일부주차를 할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조금 걸을 각오를 해야 한다. 맛있는 갈비탕을 맛볼 뜻이라면 이정도 수고 정도는 감수 해도 된다. 1년채 안된 곳이라 건물 자체가 깨끗하고 궁중왕갈비탕 내부도 칸막이식으로 된 테이블이라 낯가림이 있는사람에게는 편안하게 식사할수 있는 공간이다. 서비스 ★★★ 지금까지 방문했던 영광식당 중 서비스 부분에서 최고 점수를 주고 싶다. 몇차례 방문 할 때마다 느꼈지만 손님이 많은데도 매번 밝게 맞이해주었고 식사 마무리하고 돌아갈때까지도 밝은 모습으로 배웅을 받으니 배도 든든하고 기분도 한층 업 된 기분으로 점심 식사를 한거 같다. 특히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80년대 가요는 전혀 시끄럽지 않고 무언가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이 들게 한다. 무엇보다 테이블마다 '머리끈'통이 있는데 이는 대표님의 아이디 어로 여성분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어바웃가이드는 어바웃영광에서 시식비용을 전액지불하고 작성한 리얼맛집후기입니다. 위치 : 전남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 628-2 영업시간 : 매일 07:00~23:30 전화 : 061-35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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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남매 엄마ㆍ아빠 로 불리는 것이 더 행복" 오종철(43세)ㆍ홍선미(34)부부"아저씨~ 저 오늘은 등심좀 주세요." "정말 고기 좋아하시나봐요. 요즘 아가씨들 고기 안좋아 하던데, 오늘은 제가 특별히 더 맛있는 고기로 드릴께 요." "아저씨 ~오늘은 국거리로좀 주세요" "이렇게 자주 오시니 고기가 좋아 오시는건지 제가 좋아 오시는건지 이제 좀 헷갈리는 걸요" "뭐에요? 그럼 낼 부터 딴집 갈래요. 이 집 고기가 좋아서 오는거지 아저씨는 착각 하지마요!" "네. 그럼요. 알죠. 매일 이리 오시니 감사해서 그렇죠. 제가 정말 너무 감사해서 그러는데 오늘 저녁 사드릴께 요. 시간 어떠셔요~?" "음~시간은 괜찮은데..." "그럼 오늘 저녁에 저 옆에 식당에서 만나요." 가진거 하나 없는데다 선천성 장애를 지닌 다리로 무작정 축산쪽 전문가가 되고싶어 상경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서울살이에 선미 씨와의 만남은 하늘이 내리신 축복이 아닐수 없었다. 그 날 이후 나의 고기자르는 칼솜씨는 춤을 추듯 발전해 갔다. 그렇게 이 못난 영광촌놈에 게도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이 뭔 뜻인지를 느끼며 살고 있는 어느 날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종철아~ 아부지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이제 혼자서는 염전일을 못하겠쓰야. 니 헝아도 못한다고만 하니 니가 와서 이 아부지 도와주면 쓰것는디 .." 홀로 염산에서 염전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전화에 난그길로 다시 짐을 싸 고향으로 내려갔다. 나의 빛이 어둠이 되는 순간 처럼 느껴져 가슴 아팠지만 아버지의 부탁을 져버릴수가 없었다. 염전으로 내려오고 며칠 후이번엔 그 깍쟁이 서울아가 씨한테 전화가 왔다. "아저씨 언제와요." "선미씨 죄송해요. 저 못가요. 아버지가 혼자 계시는데 몸이 너무 불편해서 제가 곁에 같이 있어드려야 해요. 선미씨..정말 미안해요. 좋은 사람 만나요." 영광촌놈..그래. 내 꼴에 무슨 복에 서울아가씨를 만나 "아저씨네 집 영광이라고 했죠?" "네. 전라남도 영광이요" "알겠어요. 내일 전화하면저 터미널로 데리로 오세요." "네?! 선미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신다구요? 여기 를요?" "아저씨 저 좋아한다면서요. 저 좋아하는 고기 평생 원없이 먹게 해줄거라면서요." "네. 그거야 그렇지만. .선미씨 여기 영광은 아직 시골이 에요. 염전일은 더더구나 힘들고 아버지까지 모셔야 하구 선미씨 너무 힘들꺼에요" "아저씨가 도와줄꺼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정말 오실꺼에요?" "내일 봐요" 뚜뚜뚜 그렇게 영광이 어딘지 염전이 어찌생겼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서울아가씨가 영광 댁이 되는 순간이었다. 9살의 나이 차이에도 선미씬 늘 나보다 지혜로운 생각을 해냈고 스물살의 어린 나이지만 스러져가는 나를 일으켜 세울만큼 큰 사람이었다. 소금을 만든다는것이 자연의 뜻에 인간이 따르며 해야 하는 일이라 나의 욕심만으로 할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빚만 늘어 갔다. 힘들게 일궈둔 소금이 내리치는 비에 다 다시 물이 되어 버리 날 내 눈물도 같이 흘러버리며 두번다시 염전 일은 안하겠노라 댜짐을 하고 무작정 선미씨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선미씨 뱃속에 내 아이까지 우리 세 식구는 갈곳이 없어 군남의 허름한 빈집을 빌려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임신막달인 아내를 그 한겨울에 냉방에서 지내게 하며 새벽녁 인력센 터를 찾기 시작했다. 허나 불편한 내 다리를 보고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하겠다 애를 써도 나를 쉽게 데려가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허드렛일을 하고 받은 일당 9만원으로 집에 기름을 채우고 일주일 만에 따뜻한 방온기를 느끼며 행복해하는 아내를 보며 못난 나 자신을 얼마나 원망을 했는지..첨으로 나를 이리 낳아준 내 부모를 원망 했다. 정신차리자. 정신차리자. 를수없이 반복하고 난 이를 악물고 버텨야했다. 배운거 없고 가진것 없는 내가 내 가족을 지키는 거라곤 이 악물고 버티는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주변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대견스럽고 안쓰럽다며 많은 도움을 주셔 뭔가는 계속해서 했는데 야속하게도 하는것 마다 번번히 실패를 했다. 허나 실패할때마다 아이는 한명씩 늘어 난 지금 6 남매 아빠이다. 내 인생이다 실패한것만이 아닌 증거가 바로 선미씨와 나의 6남 매이다.ㅋㅋ 가진것도 없으 면서 아이를 왜 이렇게 많이 낳았냐고들 하시는데 그 심장소리를 듣고 어찌 나쁜 생각을 가질수가 있을까.. 4년전부터 나는 아내와 노 점상을 한다. 중고로 트럭을 한대 사 푸드트럭으로 개조해 매일 아내와 다닌다. 민원으로 쫓겨나기도 여러번. 이런 우리부부를 안쓰럽게 여긴 분의 소개로 지금의 노점자리 땅주인을 만났고 너무도 감사하게 한번에 사장 님의 땅위에서 이제 편히 장사하라고 응해주셨다. 노점 이다보니 허가를 낸건 아니 지만 땅주인이 허락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우린 빌딩을 세운 기분이었다. 그 분의 배려 덕분에 작고 허름하지만 아담한 우리의 일터를 마련했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예쁘게잘 자라고 있고 큰아들녀석은 체조선수로 대회에 나가 상도 타왔다. 정말 나의 보물들이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살아가 는것이 쉽지 않다는건 내 인생이 그러해 누구보다 잘알 기에 내가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할때가 많다. 하필 내가 아빠라서.. 허나 언제 어디서든 나를 보면 부끄러워 하지않고 아빠라 달려와 안기는 내 아이 들이 있고 다시태어나도 나와 다시 결혼하겠다는 선미씨가 있고 출퇴근 할수 있는내 노점가게가 있고. 이만하면 가진것 하나 없던 영광촌놈 출세 한거 아닌가요? 허가 없는 노점이지만 신선한 재료만 쓰겠습니다 .깨끗하게 조리하겠습니다. 저희 집의 가장 큰 단골손님은 저희의 보물 6남매 입니다. 저희아이들이 먹는 음식을 조리해 여러분께 판매할 것을 약속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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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카페 대표 박미진(62년생)님내 삶이 여기서 멈춘다 해도 난 후회가 없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박미진(62년)님. 이 분의 이 말 한마디에 난본인스스로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수 있었다. 잠시 그녀가 되어 그녀가 읆어 주는 인생에 대해 들어 보았다. 과연 내 삶이 여기서 멈춰 후회없는 삶이라 말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내 삶이 여기서 멈춘다면 부모님도 아닌, 남편도 아닌, 자식도 아닌 나 자신 있게 너무도 미안해서 눈물이 흐르려한다. 주어진 내 삶에서 내 자신을 아껴주지 못함과 사랑해 주지 못한것에 다른 이가 아닌 내 자신에게 미안해 난더 열심히 나를 사랑하며 살려 노력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금수저 냐고? 아니..내 인생도 정말 굴곡이 많다. 굴곡 없는 삶 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내가 생각해도 때론 내가 4차원 인가 싶을만큼 엉뚱한 삶인것 같다. 영광서 태어나 자라 도시가서 멋부리고 잘 살다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리 남들 사는것처럼 살았는데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런 출가선언이 있고 5남매의 장녀로써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의 출가가 이제 이해가 될 만 하니 남편의 부도가 따라왔고 외도까 지, 그렇게 39살에 이혼녀가 되었다. 아버지의 출가를 이해하기 위해 조금씩 배웠던 불교공 부와 명상이 모든걸 포기 하고 싶은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우는것에 쓰이게 될줄 누가 알았을까? 이래서 인생은 공짜가 없고 모든것에 이유없는 것이 없다 하나보다. 어느 비오는 밤..홀로 잠을 청하는데 문득 나를 불러보 았다. '미진아..미진아..' 40평 생을 들으며 살아온 내이름 인데 왜 그리도 낯설고 어색 한지.. 홀로 있는 방구석에서 듣는 이 아무도 없는데 한참을 더듬이다 내 뱉은 말이 ' 미진아! 사랑해.. 미진아! 사랑해!! 미진아!사랑해!!!' 수없는 말을 하며 살아 왔는데 어찌 그 가장 쉬운 말 내가 내게 하는 그 말 한마디가 그리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겨웠을까? 그 날 난 이혼 후 아이들을 떼놓고 나오던 그 날 밤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는것 같다. 법당을 차려 기도를 드리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치매가 찾아 오고 난 선택의 여지도 없이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앉아 계시던 법당엔 이젠 아버지가 아닌 내가 그자리에 앉아 기도를 드린다. 치매에 류마티스관절염을 앓고 계시는 엄마를 돌보며 나의 명상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비타민과도 같다.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카페를 차리게 되었고 난 손수 담은 건강차를 타기 시작했 다. 명상공부를 하며 연꽃에 관심이 많던 내게 어느 날그림을 그릴수 있는 시간도 찾아왔다. 그래서 지금 난 육체의 건강을 위해 번거럽지만 손수차 재료를 만들고 마음의 휴식을 위해 그림을 그린다. 내 그림을 보고 어떠한 이는 잘그렸네 못그렸네로 판 단을 하고 어떤 이는 그림의 의미를 물어본다. 내가 그림을 그리며 생각하는 부분을내 그림을 통해 내 생각을 읽어내는 손님들을 보며 그림이 가진 힘을 알았다. 그렇게 나를 사랑할 줄 알고 건강한 차를 많은 이에게 건네고 내 마음 표현할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데 어찌 내가 행복하지 않을수가 있을까.. 지금 내 삶이 끝난다 해도 무엇이 후회가 있겠는가? 나는 오늘도 내게 말한다. "미진아...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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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있는 공간 어바웃가이드_서해아구찜맛 ★★★ 오리훈제, 닭발, 새싹인삼, 옥수수,샐러드, 녹두전, 번데기, 도너츠등 반찬이 푸짐하다. 아구찜이 나오기전에 벌써 배가 부를 만큼 양도 많다. 주문한 아구찜은 ‘중’으로 했다. 하지만 막상 실물을 보니 어른 5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으로 푸짐하고 아귀도 많이 들어 있었다. 또주문받으면서 사이즈 추천도 해준다. 아구살은 담백하고 부드러웠다. 아삭한 콩나물식감과 아구찜의 매콤한 맛으로 순식간에 밥도 함께 없어진다. 아귀를 이용한 요리가 대중적으로 퍼진 역사는 생각보다 매우 짧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아귀의 식용에 대해서 특별히 서술한 바가 없으며, 자산어보를 다룬 책인 현산어보를 찾아서에서도 아귀 요리의 대중화는 실질적으로 마산의 아귀찜이 최초라고 서술하였다. 또한 아귀찜의 스토리텔링과 이를 소개한 허영만 화백의 식객이 유명해지면서 이로 인해 아귀를 최근에서야 먹기 시작한 생선이라는 것이 널리 퍼졌다. 접근성 ★★★ 서해아구찜은 영광에서 아구찜으로 아는사람만 아는 숨겨진 맛집 이다. 영광읍에서는 차로 15분~20분정도 소요된다. 가게앞 넓은 주차장이 준비되어 있어 주차하기 편하다 . 그냥 외갓집 느낌이 물씬나는 외관은 소나무 숲에 둘러 쌓여 있어 아늑하다. 내부는 룸으로 되어 있고 테이블도 넉넉하게 준비되어있어 단체로 방문하기에도 편한곳이다. 미리 전화예약을 하고 오면 기다림없이 바로 식사할 수 있다. 서비스 ★★★ 오래된 건물이지만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손님이 많더라도 테이블을 깔끔하게 치운뒤 숟가락,젓가락,물수건 셋팅까지 다 완료된 후자리 안내까지 해준다. 남은 음식은 챙겨가라고 테이블 뒷편에 일회용 비닐팩이 준비되 어있다. 주방도 오픈되어 있어 아귀가 요리되는 모습을 볼수 있어 맛에 더욱 신뢰가 간다 위치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129 영업시간 : 매일 11:30 - 21:00 (매월 2,4째주 수요일은 쉽니다) 전화 : 061-351-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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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을 지키는 영광군민들의 삶 이야기 "모종 아가씨~ 이거 빨간양파여?""모종 아가씨~ 이거 빨간양파여?" "네. 아버지. 이거 적양 파에요. 여기 보시면 색깔 보이시죠? 작년에 아버지 심으셨던 그 양파에요. 장날이라 나오 셨어요?" 길에서 모종파는 아가씨로 더 알려진 41살의 조윤경님.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끔 집에와 모종을 손수 길러 판매하는 부모님을 도와드리다 몸이 편찮아지신 어머님을 대신해 시장에 나와 모종을 팔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권유로 농업기술 센터에 가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그 교육들을 들으며 농사의 매력에 빠졌다. 교육생들 중에서도 난 유일한 아가씨 귀농인 처음 어머니를 대신해 이 일에 나섰을때는 길에서 어찌 밥을 먹을지 어찌 물을 마셔야 할지 막막해 밥을 먹지않고 종일 일도 해봤다. 허나 굶주림에 장사없다고 배가 고팠다. 그러니 자연스레 길에 앉아 밥을 먹고 목이 마르니 물도 마셨다. 지금은 어떠냐고 물으면 아침마다 내가 손수 싸온 도시 락을 길거리 일터에서 먹는 밥이 꿀맛같다. 그렇게 난 길에서 모종을 파는 모종아가씨가 되었다. 모종이 뭔지도 모르고 무턱 대고 많이만 팔면 되는건줄 알았는데 모종아가씨 7년차인 지금은 파는만큼 알려도 드린다. 어찌심어야 하는지, 어찌 관리 하셔야 하는지... 농사를 오랫동안 지으신 분들은 그 분들만의 노하우에 고집이 붙어있다. 그래서 농업대학에서 이론으로 교육을 받아온 나의 말에 반기를 드는 어르신들도 많다. 그 분들과 내말이 맞네 틀리네를 하다보면 그 이야기 속에 서도 서로 배울점이 있다는걸 알아간다. 거칠어진 내 손을 보며 날안타까워 보시는 분들도 있다. 허나 실은 목욕탕 한번 갔다오고 로션 한번 쏵~바 르면 내손도 어느 아가씨 못지않은 예쁜 손이 된다. 그러기에 모종을 건네는 내 손이 거칠어보여도 난 창피하지 않다. 봄에는 고추모종을, 여름엔 배추를 이맘 때쯤엔 양파를 파는데 이 모종 들을 사가시면 1년뒤 재미난 일이 생긴다. 어떤 분들은 억정을 내시며 "작년에 모종을 안좋은걸 줘서 농사 다 망쳤잖아!" 하시는 분도 오시고 , 음료수나 빵을 사오시면서 "역시 젊은 사람이라 속이질 않더구만. 작년에 사간 모종 얼매나 실한지 농사 잘 해먹었네. 모종 아가씨 덕에 돈 벌었네 " 하시는 분도 계신다. 난 분명 같은 장소에서 키운 모종을 같은 곳에서 팔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농사는 몇해를 해왔 노라고 큰소리 칠 직업이 아니다. 그 해 농부의 정성과 날씨의 의해서도 많이 좌지 우지 된다. 아직은 모종을 키우는것에 대해선 아버지의 보조일만 하고 판매쪽을 담당하고 있지만 난 계속 해서 공부를 해서 나만의 모종을 키우고 나만의 모종을 팔것이다. 정년퇴직이 13년 남았으니그 후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남자친구의 응원에도, 남들은 쉽게 가지 않는 길을 간다고 힘내라 말해주는 친구 들도, 2남3녀의 장녀로 든든 하다는 가족들의 말속에서난 성공 농부 조윤경을 꿈꾼다. 추운데 거리에서 모종을 파는 나를 보고 후회하지 않냐고 묻는다. 난 이 일을 더 빨리 시작못한 후회만이 있다. 이 곳에서 모종을 팔고 있음 사로 오시는 분들 99명은 어르신이다. 그리고 1명 정도가 내 또래들. 그럼 그 분들도 나도 서로 반가워 서로에게 응원의 말들을 잊지않는다. 더 많은 젊은 이들이 이 시장에 많이 보였음 좋겠다. 정말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는데 이 매력을 많은 젊은이가 알아 청년농부가 많았음 좋겠다. 60대청년 말고 진정한 청년 농부. 난 지금 종자기능사를 따기 위해 공부중이다. 정말 끝이 없는 공부이다. 너무 어렵다. 누가 농사를 쉽다고 말했는지 정말 한평생 농부로 살아오신분들이 존경스럽다. "어머니 판대기로 드려요~ 단으로 드려요?" 모종 아가씨는 오늘도 거리 에서 모종을 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