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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의 숨은 명소 영광군 4대 종교 성지

기사입력 2019.11.22 13:29 | 조회수 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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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광 가볼만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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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최초도래지 ‘법성포’

    ‘법성포’ 명칭 자체가 불교와 관련이 깊다. 법성포는 애초 아무포로 불려왔다.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 존자를 뜻한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땅에 불교를 전래하면서 최초로 발을 디딘 곳이라는 의미로 법성포로 바뀌었다. 

    마라난타가 동진을 거쳐 전한 백제불교가 간다라 양식이었기 때문에 전래된 시대를 반영해 조성되어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불교 성지로 간다라 유물관, 누각인 부용루, 탑원, 대불상 등이 조성 되어 있다. 

    간다라 유물전시관에는 간다라에서 중국,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 과정과 간다라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전시관 왼편에 자리한 탑원은 불탑과 감실형 불당으로 구성되어 간다라 사원 양식의 대표적이고 전형 적인 형태로 감실형 불당이란 불상과 소탑을 봉안하 는 곳, 소탑, 중탑, 여래입상, 승려상, 불법에 관한 스 토리가 있는 부조, 보살좌상 등이 봉안되어있다. 

    광장은 108계단을 통해 높이 23.7m의 사면대불로 이어진다. 부용루 벽면은 2007년 석장으로는 최초로 중요무 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재순 장인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23개 원석에 음각으로 새겼다. 

    석가모니의 출생부터 고행의 순간이 담겨있으며 고행하는 석가모니 석조물은 음푹하게 꺼진 뱃가죽과 도드라지는 갈비뼈, 뼈 위로 드러난 핏줄 등 고통의 순간을 섬세하게 표현해내 역사의 일면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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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수 길용리 원불교 '영산성지'

    원불교는 백수읍 길용리 영촌마을에서 태어난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이 창시한 종교로 세계에 500여 개의 교당과 100만 신도가 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 처음으로 만든 교당인 구간도실은 가로 세 칸, 세로 세간의 아홉 칸 방에서 제자들이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는 집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엔 ‘백지혈인’이라는 전설이 내려 온다. 방언공사를 끝낸 박중빈이 아홉 명의 제자들에게 각각 칼을 나누어준 뒤, 원불교의 큰 뜻 사무여한의 정신을 시험해 조교로부터 자결할 것을 명받은 제자들이 자결하기 전, 흰 종이에 손 가락으로 도장을 찍자 모두 핏자국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소태산 생가 오른편에는 이 전설을 형상화한 엄지손가락 9개가 모인 조형 물과 제자들을 형상화한 기도봉이 있다. 백수읍에 모여있는 영산성지는 소태산 대종가의 탄생가를 비롯해 기도터인 삼발재, 마당바위, 대각을 이룬 노루목,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룬 정관평 방언답, 9인 제자가 목숨을 바쳐 기도를 올렸던 9인 기도봉, 법인성사를 이룬 구간도실터, 영산원, 법모실, 적공실, 학원실 등 초기교단 건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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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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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산면 기독교 순교지 '순교탑'

    염산면에 있는 기독교 성지는 세계 교회역사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순교지로 꼽힌다. 

    6.25당시 북한군의 교회탄압에 항거하여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한 194명(염산교회 77명, 야월교회 65명)이 순교한 곳이다. 염산교회는 6.25때 노병재 집사를 필두로 그의 3형제 가족 22명을 잡아 돌을 달고 새끼줄로 꽁꽁 묶어 성도 앞바다에 밀어 넣어 수장시키는 등 77명이 순교했다. 

    야월교회는 인민위원회가 성도들을 가족 단위로 생매장한 후 성도들의 집들을 불태워 전소시켰고 교회는 불타 없어져 한국교회사나 세계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순교사로 기억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영광은 라디오 방송에서 남한이 더 우세하다는 오보로 전쟁에 대해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전국에서 가장 큰 전쟁피해를 봤던 지역이다. 

    염산면 설도항에는 기독교인 순교체험관과 기념탑이 있으며, 야월리에는 순교기념관이 건립되어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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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광성당 천주교 순교지

    영광읍 영광성당에서는 조선시대 신유박해 당시 순교한 신자들을 추모하는 천주교 순교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신유박해란 1801년 일어난 천주교 탄압이다. 

    이 탄압으로 인하여 많은 천주교도가 순교한 해 이기도 하다. 

    6.25전쟁으로 성당 건물이 전소되었는데, 1965년 성당을 재건하고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이곳은 영광순교성지의 상징이다. 네 개의 문주와 이를 연결한 가로보, 그 위에 올린 십자 순교자상으로 문은 안과 밖, 성과속의 경계 및 연결을 의미하고 네 개의 칼 모양의 기둥은 영광의 순교자 4인을 뜻하는데, 칼 형태의 십자 순교자상은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씌우는 칼과 십자가를 조합한 형상으로 영광순교자 이화백, 복산리 오씨, 김치명, 유문보를 상징하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화백과 오씨는 영광에서, 영광 뜸밭 출신 김치명이 1867년 공주에서, 영광 신어실에 한 때 살았던 유문보가 1871년 나주에서 각각 순교했다. 

    2010년 광주대교구에서 영광순교자 기념성당으로 지정받았으며, 2014년 6월에는 첫 미사를 가졌다. 

    영광순교자기념관 야외에는 이해인 수녀의 '핏빛 사랑으로'시비, 십자가의 길, 순교자 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영광순교성지의 의미를 담은 그림과 성도들이 사용했던 책자들이 게시되어 있다.

    종교 탄압에도 숭고한 종교정신을 잃지 않았던 영광지역 천주교 순교자들을 위해 영광성당에 2017년 5월 영광성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영광순교자기념관'을 개관해여 순교자들의 거룩한 정신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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