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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멈춘 시대, 영광은 다시 시작했다

기사입력 2025.04.21 14:48 | 조회수 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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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골목은 쓸쓸하다. 교실마다 빈 책상이 늘어나고, 폐교는 더 이상 낯선 뉴스가 아니다. ‘출산율’이라는 말은 통계표의 수치일 뿐, 삶 속에서 체감하는 위기는 이미 깊어졌다. 누군가는 이제 이 나라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라’라 부르기까지 한다.

    2023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꼴찌이며, 사실상 세계 최저 수준이다.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율은 사회 전체가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가족이 살아가기 적합한 구조인지 묻는 바로미터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그 질문에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결혼은 미뤄지고, 출산은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불확실한 미래, 부족한 주거 환경, 치솟는 육아 비용, 경력 단절에 대한 불안… 모두가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이제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통계의 끝자락에서, 의외의 이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바로 전라남도 영광군. 인구 5만 명 남짓한 이 작은 군은, 무려 6년 연속 전국 합계출산율 1위를 기록하며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대도시도, 특별한 산업도 없는 이곳이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이를 많이 낳는 지역’이 되었을까?

    영광군은 거창한 슬로건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실질적이고 생활에 닿는 정책을 선택했다. 결혼을 망설이는 청년에게는 결혼장려금과 신혼부부 주거 지원, 아이를 낳는 가정에는 출산축하금, 산후조리비, 양육수당, 난임 치료비 지원까지 세세하게 마련했다.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민 것이다.

    그 결과, 주민들은 “낳아볼 만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출산은 가능성으로 바뀌었고, ‘낳고 싶다’는 마음이 ‘낳을 수 있다’는 현실로 이어졌다.

    하지만 행정의 숫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배경이 있다. 영광군은 청년을 머무르게 하기 위해 사회적 기반 구축에 힘썼다. 100억 원 규모의 청년발전기금, 청년 채용 기업에 대한 고용지원, 첫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한 ‘늘품빌리지’ 같은 임대주택, 아이와 부모가 함께 머물 수 있는 공동육아 나눔터 등 삶 전반을 아우르는 기반 시설을 확충해 나갔다.

    ‘출산율 1위’라는 성과는 이처럼 다양한 정책과 노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단순히 아이를 낳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랄 수 있는 마을의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는다.

    이제, 이런 변화를 전국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방정부는 예산과 인력, 제도적 권한의 부족 속에 여러 제약을 받고 있다. 정부는 다양한 출산 장려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지역별 특성과 상황에 맞춘 정책 설계는 어렵기만 하다.

    이에 따라 지방소멸대응기금은 더욱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하며, 출산율이 높은 지역에는 실질적인 재정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지방정부가 인구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자율권 확대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는 일은, 한 가정의 기쁨을 넘어 지역의 내일을 지키는 일이다. 울음소리가 끊긴 시대, 그 침묵을 깨운 곳이 바로 영광군이었다.
    그 울림은 작지만, 지금 이 나라가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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