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경아 ...빈 손으로 귀향 하기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이 못난 나하나 믿고 여기 까지 함께 와줘서 고맙고, 고생을 너무 많이 시켜서 미안하다. 앞으로도 살다 보면 힘든 일 있겠지만 그땐 내가 좀 더 노력해서 조금은 덜 힘들게 할께. 앞으로 좋은 일들만 있을수 있게 할께. 친구에서 부인 으로 여기까지 늘 내 옆자리 지켜줘서 고맙다."
고향에서 먹고 살기 힘들것 같아 20살에 부모님반대에도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는 최윤복(53)님. 아내에게 쑥스러워 한번도 해본적 없다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떨군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 은 한양으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 정말 서울만 가면 다성공할줄 알았다. 수많은 인파속에 내가 하면 뭐든 잘될 거라 믿었다. 고향에서 나의 유일한 안식처는 가끔 만나는 고향 동창들이었고 그 동창들 속에 지금의 내 아내도 있었다. 20살이라는 나이가 한살한살 더해지면서 나의 실패의 좌절은 늘어갔고 그 상처와 처절함은 반복을 해도 똑같이 힘들고 아팠다.
27년의 타향 생활은 나를 만신창이로 만들었고 더 이상 그곳에서 내게 희망이라는 것은 찾을수가 없어 어렵게 가족들에게 내 상처를 조심스레 꺼내었다. 남자로써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정말 심장을 도려내는 아픈 말이 었다.
"내가 더이상 여기선 버틸수가 없다. 우리 고향으로 가자" 아내도 아이들도 단 한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겠노라 했다.
반발이 심할거라 생각했는데 이 무능한 가장을 비판할줄 알았는데 가족들의 "그러 자" 라는 말 한마디에 난또 다시 아팠다. 너무도 미안하고 너무도 고마우니 그 또한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그렇게 27년 만에 떠나갔던 부모님의 집으로 다시 돌아 왔다. 혼자가 아닌 내 가족과 함께 였다.
부모님의 억장또한 얼마나 무너졌을지 알기에 정말 힘든 발걸음이었지만 그 곳밖에 갈곳이 없었다.
그렇게 아내와 나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친구조차 만나기 어려웠다. 그런 우리 부부를 더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고 웃어주고 걱정 해주고 앞날을 함께 고민해 줬던 친구들이 없었음 지금의 나도 없었을 터이다.
어릴적 내고향만 생각하다 성인이 되어 돌아와보니 관광특구가 되어 수많은 인파가 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떡집을 다니며 모시송편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임대를 얻어 작은 떡집을 차렸고 아내는 수십 개의 떡박스를 들고 관광버 스들을 찾아 오르내리며 시식을 보여드리고 떡을 팔기 시작했다. 밤이면 무릎이 아파 파스로 도배를 해가며 그렇게 수없는 버스를 오르내 리니 조금씩 주문이 들어왔고 그렇게 우린 7년만에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올렸다. 내가 싫다고 떠났던 내 고향 땅에 보란듯 건물을 세웠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도 훔치고 아무도 모르게 웃어도 봤다. 그 동안의 내 고생은 괜찮으나 가족들을 고생시켰던 나날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난 이제 부터가 시작이다 생각한다. 내인생의 반환점 에서 턴을 했다. 이제 가족 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친구들에게 가로수도 되어 줄 것이다.
고향 땅이 싫다고 떠났던 스물살의 청년은 이제 쉰 셋의 아저씨가 되어 내 고향 땅에서 활짝 웃고 있다
크리에이터 박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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