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회가 영광군청에 마련한 고 백남기 씨 분향소를 찾은 농민들. 이렇게 가다가는 머잖아 죽어버릴 ‘농업’의 분향소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숙연하다. |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쌀 80Kg(나락 1섬) 가격은 17만 원 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21만 원 유지를 공약했다. 당선 후 매년 쌀값은 내려만 갔다. 96,250원까지. 농민들 기억으로는 30년 전 가격이다.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됐다. 올 쌀농사는 사상 유래 없는 대풍이다. 유래 없는 대풍은 유래 없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영농비는 오르는데 정부 수매가는 낮아진다. 덩달아 각 지역 단위농협이 대주주인 RPC(미곡처리장)를 통한 수매가도 낮아진다. 수매하고 남은 쌀은 처분할 길이 막연하다. 대풍으로 남아도는 양만큼 처리할 길은 막막하다. 창고 임대료 부담만 커지게 된 실정이다.
올 쌀 생산량은 작년 432만7000톤 보다 많은 450만톤 이상으로 예상된다. 쌀 20Kg 도매가격은 6년만에 최저인 34000 원까지 떨어졌다. 정부 수매가는 45,000 원으로 예정됐다. 농협 등을 통한 수매는 35,000원 정도로 예상된다. 그나마 일정량 이상은 수매하지 않는다. 남는 쌀은 어찌하나 걱정이다. 가격을 불문하고 전량수매를 요구하는 이유다.
30년 전 가격으로 팔고 남으면 창고 보관료 물면서 저장하는 길밖에 없다. 농민들은 말한다. 정부 당국자들은 30년 전 월급 받으면서 살 수 있느냐고. 농민들은 수입쌀에 밀려 찬밥 신세로 전락한 우리 쌀을 끌어안고 눈물을 삼켜야 할 처지다. 대정부 시위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지 10개월여 만에 숨진 백남기씨 분향소가 마련된 영광군청 마당에서 22일 만난 묘량면 노모 씨(67)는 “30년 전 가격이라도 전량수매나 해달라는 우리 처지가 딱하다”며 분노 어린 한숨만 쉬었다.
정부는 근본적 대책은커녕 당장 농민의 눈물을 닦아줄 1회용도 내놓지 않고 있다. 무(無)대책이다. 학계에서는 품질 좋은 쌀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게 하는 차별화 전략, 작물전환시 과감한 인센티브 제공 등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평균적 쌀 대량 생산을 유도하는 정책구조를 뿌리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춘화 영광 농민회장(65)은 정부의 농정을 3무(無)로 규정한다. 무정책·무대책·무대응이다. 신 회장은 불만에 찬 농민들의 시위가 예년보다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도덕성 해이와 능력 부족 등으로 부실을 자초한 해운·조선사에 수조 원씩 퍼부으면서 농업에는 인색한 정부를 질타했다.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면 뭣하나. 정권교체 외에는 길이 없다. 스위스는 5%의 농업을 살리기 위해 FTA를 거부했다. 그런 정권이어야 한다.” 정권교체 외에는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농민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목소리다. <관계기사 2면· 5면> 조철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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