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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고도도서 전국 최초 ‘봉수군마을’ 터 확인…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 규명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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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고도도서 전국 최초 ‘봉수군마을’ 터 확인…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 규명 기대

실제 거주 흔적·우물 터 등 고고학적 증거 확보… 문헌 속 ‘봉수동’과 일치

1.사진(고도도봉수 봉수군 마을 내 우물 터).jpg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봉수군의 생활 유적이 영광에서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 영광군은 7일 개최한 ‘영광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 시굴조사 자문회의’에서, 『호구총수』(1789년)에 기록된 봉수군 거주지로 전해지는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봉수동) 터’를 실제 유적으로 밝혀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는 영광군이 지난해 실시한 학술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헌 기록과 지역민 증언을 토대로 고도도 봉수 남쪽 약 30분 거리 산비탈 끝자락에서 진행됐다. 조사단은 세 곳의 구덩이를 나눠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석렬(石列)과 8~9단의 계단식 석축, 지금도 물이 솟는 우물 터를 발견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성과는 해당 지역이 단순한 통신시설 주변이 아닌 실제 사람이 거주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봉수로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는 점, 조선시대 문헌에 ‘봉수동’으로 기록된 점 등과 함께, 이곳이 봉수군이 거주하던 봉수군마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단의 분석이다.

영광 고도도 봉수는 조선시대 제5로 직봉노선 중 하나로, 여수 돌산도에서 출발해 서울 남산(양천 개화산)까지 이르는 총 23개 봉수를 연결하는 국가 통신망의 핵심축이었다. 각 봉수에는 약 100명의 병력이 편성됐으며, 5인 1조로 5일간 윤번제로 봉수를 지켰다. 봉수군은 횃불로 신호를 전달하고 후망(감시) 역할도 병행했다.

이번에 확인된 봉수군마을 유적은 국내에서 봉수군의 실제 생활 기반을 보여주는 첫 사례로, 봉수제 운영체계와 봉수군의 사회·경제적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된다.

영광군 관계자는 “이번 유적은 조선시대 통신·국방의 실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희귀한 사례”라며 “봉수군마을과 봉수로에 대한 후속 학술조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사적 지정 구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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