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레이어 알림

팝업레이어 알림이 없습니다.

2026.02.02 (월)

  • 맑음속초1.3℃
  • 맑음-1.6℃
  • 구름조금철원-2.4℃
  • 맑음동두천-1.8℃
  • 맑음파주-1.5℃
  • 구름많음대관령-5.7℃
  • 구름많음춘천-0.2℃
  • 맑음백령도-0.6℃
  • 구름조금북강릉1.6℃
  • 구름조금강릉1.5℃
  • 구름조금동해1.6℃
  • 맑음서울-1.3℃
  • 맑음인천-2.2℃
  • 구름많음원주-1.7℃
  • 눈울릉도-0.4℃
  • 맑음수원-0.7℃
  • 구름많음영월-1.6℃
  • 구름많음충주-1.9℃
  • 구름조금서산-1.0℃
  • 구름많음울진3.8℃
  • 구름많음청주0.4℃
  • 구름조금대전0.0℃
  • 흐림추풍령-2.5℃
  • 구름많음안동-2.5℃
  • 구름많음상주0.2℃
  • 구름조금포항3.3℃
  • 구름조금군산0.4℃
  • 구름많음대구2.7℃
  • 구름조금전주0.2℃
  • 구름조금울산3.2℃
  • 구름많음창원3.0℃
  • 눈광주-0.5℃
  • 맑음부산4.5℃
  • 구름조금통영5.0℃
  • 구름많음목포0.9℃
  • 구름조금여수2.6℃
  • 구름많음흑산도2.9℃
  • 구름많음완도2.6℃
  • 구름많음고창0.5℃
  • 구름많음순천0.6℃
  • 구름많음홍성(예)-0.7℃
  • 구름많음-1.0℃
  • 구름조금제주6.3℃
  • 구름조금고산5.5℃
  • 구름조금성산5.8℃
  • 맑음서귀포9.7℃
  • 구름조금진주4.1℃
  • 맑음강화-1.6℃
  • 구름조금양평-0.2℃
  • 구름조금이천-0.3℃
  • 구름많음인제-2.1℃
  • 구름조금홍천-1.8℃
  • 구름많음태백-4.8℃
  • 구름많음정선군-1.7℃
  • 구름많음제천-2.1℃
  • 구름많음보은-0.9℃
  • 구름많음천안-0.2℃
  • 맑음보령1.8℃
  • 구름많음부여0.4℃
  • 구름많음금산-1.4℃
  • 구름조금-1.4℃
  • 구름많음부안1.2℃
  • 구름많음임실-0.3℃
  • 구름많음정읍0.5℃
  • 구름많음남원1.2℃
  • 흐림장수-2.8℃
  • 구름많음고창군-0.6℃
  • 구름많음영광군0.2℃
  • 구름조금김해시4.7℃
  • 구름많음순창군-0.2℃
  • 구름많음북창원4.5℃
  • 구름많음양산시4.7℃
  • 구름많음보성군3.0℃
  • 구름많음강진군2.5℃
  • 구름많음장흥2.4℃
  • 구름조금해남3.3℃
  • 구름많음고흥3.2℃
  • 구름조금의령군3.6℃
  • 구름많음함양군0.7℃
  • 구름조금광양시4.0℃
  • 구름많음진도군2.6℃
  • 구름많음봉화-2.2℃
  • 구름많음영주-1.3℃
  • 구름많음문경-0.9℃
  • 흐림청송군-0.6℃
  • 맑음영덕1.9℃
  • 구름많음의성1.8℃
  • 구름많음구미0.9℃
  • 구름많음영천2.4℃
  • 구름많음경주시1.9℃
  • 구름많음거창1.0℃
  • 구름조금합천4.1℃
  • 구름많음밀양3.7℃
  • 구름많음산청0.7℃
  • 구름조금거제4.8℃
  • 구름조금남해3.8℃
  • 구름많음4.6℃
기상청 제공
영광 고도도서 전국 최초 ‘봉수군마을’ 터 확인…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 규명 기대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광 고도도서 전국 최초 ‘봉수군마을’ 터 확인…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 규명 기대

실제 거주 흔적·우물 터 등 고고학적 증거 확보… 문헌 속 ‘봉수동’과 일치

1.사진(고도도봉수 봉수군 마을 내 우물 터).jpg

조선시대 봉수제 운영 실태를 보여주는 봉수군의 생활 유적이 영광에서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 영광군은 7일 개최한 ‘영광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 시굴조사 자문회의’에서, 『호구총수』(1789년)에 기록된 봉수군 거주지로 전해지는 ‘고도도 봉수 봉수군마을(봉수동) 터’를 실제 유적으로 밝혀냈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시굴조사는 영광군이 지난해 실시한 학술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문헌 기록과 지역민 증언을 토대로 고도도 봉수 남쪽 약 30분 거리 산비탈 끝자락에서 진행됐다. 조사단은 세 곳의 구덩이를 나눠 조사한 결과, 조선시대 건물지로 추정되는 석렬(石列)과 8~9단의 계단식 석축, 지금도 물이 솟는 우물 터를 발견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성과는 해당 지역이 단순한 통신시설 주변이 아닌 실제 사람이 거주한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봉수로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는 점, 조선시대 문헌에 ‘봉수동’으로 기록된 점 등과 함께, 이곳이 봉수군이 거주하던 봉수군마을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조사단의 분석이다.

영광 고도도 봉수는 조선시대 제5로 직봉노선 중 하나로, 여수 돌산도에서 출발해 서울 남산(양천 개화산)까지 이르는 총 23개 봉수를 연결하는 국가 통신망의 핵심축이었다. 각 봉수에는 약 100명의 병력이 편성됐으며, 5인 1조로 5일간 윤번제로 봉수를 지켰다. 봉수군은 횃불로 신호를 전달하고 후망(감시) 역할도 병행했다.

이번에 확인된 봉수군마을 유적은 국내에서 봉수군의 실제 생활 기반을 보여주는 첫 사례로, 봉수제 운영체계와 봉수군의 사회·경제적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평가된다.

영광군 관계자는 “이번 유적은 조선시대 통신·국방의 실체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희귀한 사례”라며 “봉수군마을과 봉수로에 대한 후속 학술조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궁극적으로는 사적 지정 구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